70년대. 빼곡히 쌓인 기억들 속에서 엉성한 초기 기억을 하나 불러오기를 해본자. 고급 아이스크림 맛의 첫 기억은 내가 여섯 살이 됐을 무렵 광화문 코리아나 호텔 커피 솝에서 외할아버가 사준 그것이다. 녹아 내리는 달콤함과 그 서늘한 전율. 언제나 새초롬하게 웃음 한번 보이지 않던 무서운 외할아버지와 처음한 외출이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나를 안아주셨고 그곳에서 아이스크림을 사주셨다. 어린 마음에도 불편하고 거북하기 짝이 없던 데이트는 내가 먹던 연분홍 빛깔 딸기 아이스크림과 똑 같은 빛깔의 원피스를 입은 엄마가 등장하면서 막을 내렸다. 할아버지를 닮은 엄마가 법원 서류봉투를 탁자에 놓으며 “이제 끝나겠지요”라고 무미건조하게 말했다. 할아버지가 턱으로 나를 가르켰다. “얘도 애비한테 보내라. 박씨는 박씨 집안에서 커야지” 엄마가 말없이 물잔을 집어들자,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 엄마를 외면했다. 나를 안아올리시며 “그만가자”하셨다. 할아버지 키높이에서 내려다본 내가 남은 아이스크림 은 그새 냉기를 잃고 딸기우유처럼 흥건히 녹아 있었다.
80년대. 고등학교 2학년 가을 유명 광고회사에 갓 입사한 이종사촌 언니 덕 생전 처음 아르바이트를 했다. 한 시간 동안 한국에 처음 수입되는 아이스크림을 먹고 그 회사 기획팀들의 질의에 응답해주고 칠천 원을 받았다. 하겐다스 아이스크림이었다. 초코 맛과 바닐라를 먹었다. 빙그레 투게더 아이스크림이 최곤줄 알던 내게 하겐다스 바닐라 아이스크림은 너무 진해서 뒷맛이 텁텁했고 초코는 너무 달았다. 사촌언니가 돈봉투를 건내며 ‘과장님이 너 참 똘하다고 하시더라’ 라고 말할 때 달고 느끼했던 아이스크림 맛이 눈 녹듯 사라졌다.
90년대. 대학원에서 박사 수련을 시작했다. 자료조사와 발표, 토론으로 이루어지는 수업이 만만치 않았다. 진작에 이렇게 공부했으면 우리가 ‘서울대 갔지. 수석두 가능했을거야’라며 학구열을 불태웠다. 아뿔사, 그런데 항상 ‘얘 키우고 일하며 공부하기 힘들어요’라고 징징대던 선배가 사고를 쳤다. 다른 대학에서 특별 출강해주시는 문학비평 교수님 수업세미나에서 이미 출간된 번역본을 요약해 발표를 했다. 비평 시야를 포스트모더님의 지향점과 문제점애 초점을 맞춰 서술한 책인데 사회학과 전공자가 번역해서 출간한 것이었다. 당연히 용어도 다르고 부분부분 번역이 빠져있던 그런 책이었다. 예를 들어 “representation”은 같은 용어라도 문학에서는 ‘재현’이라 번역하지만 철학이나 사회학에서는 ‘표상’이라고 번역한다. 선배의 발표 내내 바‘용어라도 좀 바꾸지’ 라며 오그라드는 손발에 어쩔 줄 몰랐는데, 교수의 오금저린 한마디 ‘이 학교 학생들은 학위를 날로 먹으려고 하나’. 왕따 선배 덕에 자존심이 구긴 나와 다른 한 친구 저녁 겸해서 세미나 실에서 짬뽕과 빼갈을 시켜 주거니받거니 술빨을 올렸다. 뜬금없이 에밀리 디킨스의 죽음에 관한 시들을 후배가 영어로 읊어대기 시작 했고 나는 반 자동적으로 번역과 토를 달았다. 그런 우리 모습을 토끼눈으로 지켜보던 조교가 슬그머니 세미나 실을 나갔다. 그러나 알코올 돗수 높은 싸구려 술의 취기 확 퍼질 무렵 조교가 다시 돌아 왔다. 그녀는 아이스크림을 사러 나갔던 것이었다. 영시의 버터 냄새를 냉동시켜 논 결정체라며 하겐다스 아이스크림통을 내밀었다. 스트로베리 치즈 맛이었다. 느끼한 차가움이 취기를 조금 물러나게 했다.
2000년대. 대략 5년전 영국 북동부의 한 도시. 시내 중심가에 구름다리로 다섯개의 건물이 이어진 쇼핑센터가 있었다. 그 중간쯤에 베스킨 라벤스 아이스크림 매장이 이었다. 그런데 한국과는 달리 늘 한산했다. 내가 지나칠 때만 그런 건지 한산하다 정도가 아니라 가게에 손님을 본적이 없었다. 슈퍼에서 간혹 아이스크림을 바이 원 겟원 프리(하나사면 또 하나는 공짜)로 팔았다. 그럼에도 학생 손님이 많은 단골 슈퍼 매장에서 제일 비싼 하겐다스는 사가는 사람이 없었다. 2파운드 70피(당시 한화 6000원)였던 그 아이스크림을 사려고 나는 신라면(차이나타운에서 개당 65피 약 1300원정도 하던)을 포기했다. 물로 스트로베리 치즈 맛을 골랐다. 그러나 공짜란 늘 아쉬움을 남기는 법 그 맛은 딸랑 한 통이 남아 있엇고 초코와 바닐라만 수북했다. 나머지로 초코를 골랐다. 그리고 그 초코 맛은 서너달 동안 냉동실에 처박혀 있었다. 그 진저리 나는 단맛이 늘 축축하게 비에 저은 그곳의 우울한 일상의 활력이 된다는 깨달음이 있기까지 말이다.
3년 전 영국. 현관에서 ‘신발 벗어야되죠?’라고 묻는 그의 손에 엡솔루트 한병과 스트로베리 치즈맛 하겐다스 한 통이 들려 있었다. ‘와우’라고 감탄사를 내지르며 호들갑을 떠는 내게 그가 ‘쉬’라며 손을 입가에 대며 눈짓을 한다. 발목부상으로 목발로 계단 오르기가 고역이라는 훈이가 쿵쿵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하겐다스 아이스크림 통을 받아 들며 소리없이 웃었다. 어차피 먹기는 셋이 같이 먹겠지만 둘만의 비밀인듯하여 짜릿했다. 텔레비전 광고에서 거쉰 목소리의 영국 성우가 ‘엔조이~ 하겐다스~’라고 끝맺음을 할 때마다 나는 은밀한 유혹을 즐겼다. 그러나 내게 남자는 달콤하면서도 그렇게 서늘하다.
바로 3일전.비오는 여름날에 듬성 듬성 이 빠진듯 빈자리가 눈에 띄는 지하철 실내에서 곰팡이내 풍기는 에어컨 바람에 몸이 시렸다. 호기였을까, 아님 자존심? 돈이 없다는 비굴함이 치가 떨리도록 지겨운데 지킬 자존심이 있던 걸까? 아마 그건 소극적 항변, 아니 나를 좀 더 잘 나 자신을 인지하게 된데서 오는 더 다치기 싫은 최소한의 보호막일지 모른다. “별로 생각 없습니다. 지방대 강의도 벅찰거 같네요” 라고 말해 버렸다. 안내 방송이 나왔다. “서울 메트로는 승객 여러분의 쾌적한 승차를 위해 지금은 객실 내에 에어컨을 가동 중입니다. …너무 춥거나 덥다고 여기시는 승객께서는 객실에 비치된 비상전화를 이용하시어…” 끕끕한 냉기에 소름이 돋기 시작할 무렵 하차했다. 지상은 끕끕한 더위를 만드는 비가 퍼붓고 있었다. 퍼붓는 비줄기가 몸의 기를 다 앗아가는 것만 같았다. 달고 시원한 것이 간절해졌다. 슈퍼 입구에 아이스크림 50% 세일이라고 적혀있었지만 붕어빵 아이스림, 찰떡아이스, 구구콘, 설레임, …. 모두 기분을 끌어올릴 단맛도 시원함도 전해 줄 것 같지 않았다. 편의점에 들어갔다. 내가 들어간 집엔 바닐라와 녹차만 있었다. 다음 편의점, 그 다음, 이렇게 몇집을 거치면서 오기이니 집착인지 꼭 사고 말겠다는 집념을 다졌다. 빗물이 스며든 구두 속에서 발이 퉁퉁 불어갔다. 베스킨 라벤스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 넓지 않은 매장엔 주문하는 사람들 앉아서 수다떠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트윈 베리 치즈 아이스크림 이름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로 바뀌었다. “파인트는 세가지 고르실수 있구요” “피스타치오 아몬드하고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주문이 그렇게 쑥스럽고 민망적이 없었던거 같다) 두가지만 주세요” 집에서 수선에 발을 닦으며 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로 이름이 바뀌었을까 고민을 했다. 별 연관 성이 떠오르지 않았다. 다만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란 대사만 떠오를뿐이었다. 투게데 아이스크림 갑절의 베스킨 라벤스 아이스크림, 이 보다 더 좀 비싼 하겐다스 아이스크림. 그 달콤함과 시원함이 다르다. 어느덧 더 느끼하고 더 달게 다가오는 달콤함이 주는 만족에 중독이 되었다.그 밤 달콤한 그 맛에 취해 내일의 태양이 떠오르면 녹아버릴 뭔가의 빈약한 서늘함이 서글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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